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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여왕 '엘리자베스 바토리'

아크 프람벨제 2007. 9. 23. 19:14

 

 

피의 여왕 '엘리자베스 바토리'

 

 

 

엘리자베스 바토리(1560~1614)

가장 유서깊고 부유하며 영향력있는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바토리가는 유럽제일의 합스부르크가와 비견될 정도의 명문가로 집안엔 군주나 추기경도 있었고,
 
사촌은 헝가리 왕국의 수상이었다.

Elizabeth Bathory는 4살이나 5살 때 경 극히 심한 발작을 일으켰었다고 한다. 
 
바토리 가는 막대한 재산과 영지를 잃지 않기 위해 근친 결혼을 많이 했는데
 
때문에 집안에 유명인을 배출한 만큼 미친 사람이나 정신이상자가 많았다.

 
 
15살 때 Bathory는 Ferenc Nadasdy 백작과 결혼을 하는데,
 
백작은 당시 26살로 워낙 전쟁을 좋아했던 관계로 거의 떨어져 지냈다.
 
장군의 아내로 엄격하게 처신하라는 시어머니의 강압과 압제로 감옥이나 다름없는 규제속에서
 
그녀는 점차 말이 없고, 냉담하고, 음습한 여인으로 변모했다.
 
여기에 더하여 "바토리가"의 유전병인 간질(로 추정되는 발작 증세)도 그녀를 정신적으로
 
돌아버리게 하는데 크게 일조하는데 바토리가는 근친상간에 의한 유전병이 많았다고 한다.

 

  612명의 처녀가 피를 흘린 성

 

Bathory는 언젠가 낯선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했다가 한참 후에나 성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남편인 백작은 금방 이를 용서했다고 한다.
 
거의 남편과 같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한지 10년이 지난 1585년에 딸 Anna를 낳았고,
 
다음 9년 동안엔 딸 Ursala와 Katherina를, 그리고 1598년에야 비로소 외아들 Paul을 낳았는데
 
바로 이 기나긴 기간 동안 Bathory는 유모인 Ilona Joo, 집사 Janos Ujvary, 하인 Thorko, 숲에 사는 마녀 Darvula와
 
또 다른 마녀 Dorottya Szentes 등과 함께 수시로 젊은 하녀들을 고문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것이 진짜 끔찍한 행위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남편의 죽음이었던 것 같다.

 
 
남편 Ferenc 백작은 1604년 51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했고,
 
이것이 큰 충격이었던지 Bathory 는 끔찍한 괴물로 돌변해 버린다.

자기에게 너무나 강압적이었던 시어머니를 성에서 쫓아내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악마숭배에 빠져들어
 
처음엔 말이나 기타 동물들을 제물로 사용했지만, 나중엔 인간 제물을 바쳤다고 하는데,
 
끔찍한 고문과 살인의 진정한 목적은 젊음을 되찾는 것이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곱고 아름다운 얼굴과 피부가 삭아들어가고 있음을 개탄한 Bathory는
 
젊은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여 예전의 미모를 되찾으려 했다.

 

 

 

 

 

 

젊은 여인의 피로 젊음을 되찾고자한 잔혹한 여인

어느날 머리를 빗겨주던 하녀가 실수를 하여 머리가 심하게 땡겨지자, Bathory는 하녀의 따귀를 때렸고,
 
좀 심하게 때렸는지 하녀의 뺨이 손톱에 긁혀서 피가 났다. 그런데 그 피가 Bathoty의 손 에 떨어졌고,
 
Bathoty는 순간적으로 손의 피부가 탱탱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젊은 처녀의 피가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비밀"이라 생각한 그녀는 그 이후 수시로 처녀를 잡아다 죽여서, 그 피로 목욕을 했다.

발목을 밧줄로 묶어서 거꾸로 매단 다음 목을 따서 그 피를 받아 목욕을 했으며, 가끔 진짜 예쁜 처녀 아이가 잡혀오면
 
"특별 메뉴"로 피를 마시기도 했는데, 처음엔 잔에 받아마셨지만,
 
마지막엔 직접 목을 물어뜯어 생피를 그냥 받아마셨다고도 전한다.
 
 
 

 

'배나무 사건'으로 알수 있는 잔혹함

그녀의 잔혹한 성품을 말해주는 것 중에 배나무 사건이 있었다.
 
그녀의 영지에 사는 농부의 딸 하나가 배가 고픈 나머지 배를 하나 훔쳐먹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토리의 하인이 소녀를 밀고했고 고문을 하기도 전에 배를 따먹은 일을 자백했다. 

 


많은 농부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관대한 처분을 내린다면서 배나무에 하룻동안 묶어놓게 했다.
 
그 대신 그녀는 하녀에게 시켜 이 소녀의 전신에 꿀을 발라놓도록 했다.
 
꿀 냄새를 맡은 벌들이 사방에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수천, 수만 마리의 벌들에게 쏘인 소녀는 온몸이 퉁퉁 부어서 죽었다.
 
그래도 벌들은 그치지 않고 날아와 그녀의 몸에 달라붙은 꿀을 먹으려고 아우성이었다.
 
그녀가 죽자 이번에는 개미와 구더기가 달려들어 그녀의 시체를 파먹었다.
 
농부들은 에르체베트 바토리의 잔인한 처서에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그녀는 권력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농부들은 감히 불평을 말할 수도 없었다

 

 

 

 

 

 

 철의 처녀

 

 

독일의 유명한 기술자에게 특별 주문 제작한 것으로 실제 사람처럼

 

아주 정교하게 만든 철제 인형으로 그녀가 즐겨 사용하였다고 한다.

 

등신대의 벌거벗은 인형으로 피부는 사람과 똑같은 색이고, 기계장치로 눈과 입도 열리고 머리카락도 있었다.

 

여자를 벌거벗겨 인형 앞에 놓으면 톱니바퀴가 움직여 인형은 두 팔을 올려 여자를 감싸안는다.

 

다음에 인형의 가슴이 열리는데 그 안은 비어있다.


좌우로 펼처진 문에 다섯 개의 칼날이 있다.

 

인형의 몸안에 갇힌 여자는 필사적이지만 칼로 전신을 찔려 뼈가 부서지고 처녀의 온몸을 사정없이 찌르면서 피를 뽑아낸다.

 

그 피는 인형안의 홈을 따라 흘러 바토리의 욕조로 쏟아지게 되어있다.

 

 

 

 

 

철의 새장

 

 

철창으로 만든 새장 같은 곳에 처녀를 가둬 놓고 도르래로 천정까지 들어 올린 뒤 버튼을 누르면

 

철장안에서 날이 선 칼날들이 튀어 나와 처녀의 몸을 꽉 조이며 난자한다.

 

새장 아래에 있던 "바토리"는 그 쏟아지는 피를 맞으며 샤워를 했다는 바토리의 잔혹한 성품을 말해주는 예로는,


 

 

금화를 훔치다 들키면 ----불에 달군 금화를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바토리"의 옷을 잘못 다리면----시뻘건 인두로 얼굴을 지져 놓는다.

 

어쩌다 수다라도 떨면----굵은 바늘로 입을 꿰매 놓는다.
 

과일 훔치다 들키면----온몸에 꿀 발라 불개미에게 뜯어 먹게 한다.

 

심심하면----처녀 알몸을 꽁꽁 묶은 뒤 얼음 위에 굴린다

 

 


1600년 부터 1610년 까지 Bathory는 연속적으로 젊은 처녀를 살해하여 모종의 악마적 종교 의식을 거친 후 그들의 피로 목욕을 했다고

 

하는데, 죽은 이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는지, 시체를 근처 교회로 보내 신부로 하여금 장례를 치르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원인모를 죽음"을 당한 처녀의 수가 너무나 많아지자 그 신부는 더 이상 장례를 치뤄주지 않았고,

 

소문이 날까 두려운 나머지 Bathory는 신부를 불러다가 누구에게도 비밀을 발설하지 못 하도록 친히 협박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처녀의 피는 처음 만큼 효과가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이에 측근들은 천한 농촌 처녀가 아니라 귀족 처녀의 피라야 더 효과가 있다고 부추기고

 

이에 바토리는 성내에 귀족적 소양을 가르치는 "귀족 여학교"를 설립해 한번에 25명 씩 학생을 받았다.

 

시체는 들판이나 헛간, 성 바로 옆 창가, 근처 채소밭 등에 아무렇게나 묻고 시체 네 구를 성벽 밑으로

 

그냥 떨어뜨린 적도 있다하니 당연히 꼬리를 잡히기 시작해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고

 

그러다 희생자 하나가 극적으로 탈출해 정부 당국에 신고했기 때문에,

 

Matya 왕은 Bathory의 사촌이며 그 지방 영주인 Gyorgy Thurzo 백작 에게 명하여 진상을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1610년 12월 30일 성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 조사팀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몸에 피가 모두 빠져버린 젊은 여자 시체가 있었고, 꼬챙이에 찔린 채 아직 살아있는 여자도 몇 명 있었으며,

 

지하실에 내려가보니 온갖 종류의 고문으로 만친창이가 된 젊은 처녀들이 수두룩했다.

 

곳곳에서 피가 말라붙은 칼, 송곳 등의 고문 도구들이 발견되고 게다가 성 주변을 파보니 여자 시체가 50여구나 나왔다.

재판은 1611년에 열렸지만, 정작 Bathory는 재판에 참석하지도 않았으며, 유무죄에 관해서도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재판에서 집사인 Ujvary는 처녀 37명을 살해했으며, 그중 여섯은 일자리를 찾아 성에 들어왔던 여자였다고 자백했는데,

 

개는 몇주일 심지어는 몇 달 동안이나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자백은 그러했지만, 실은
총 612명을 죽였다고 한다. Bathory는 모든 것을 일기에 써서 기록
에 남겼고,

 

숫자는 이를 근거로 한 것이다.

 

 

 

고문은 대개 수하들이 담당했지만, 가끔은 백작 부인이 직접 처녀들을 고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 끔찍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 목이 잘린 후 화형을 당했고, 수뇌급 두명은 손가락을 잘린 후 산채로 불에 타죽었지만,

 

Bathory만은 오로지 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목숨을 건졌다. (법적으로도 귀족은 처형할 수 없다고 한다)

 

 

 


Bathory는 그대신 높은 탑 꼭대기에 감금되었는데, 음식을 넣어주는 작은 구멍 이외에는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방이었다고 한다.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로 연명하면서도 그녀는 참회의 말 한 마디 없었다.

 

감금 4년만인 1614년 8월 말, 54세의 나이로 Elizabeth Bathory는 어두운 감방에서 세상을 떠난다.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그녀의 시신은 그곳에 묻힐 수 없게 되었고, 그녀가 Ecsed 혈통의 마지막인 것을 감안하여

 

헝가리 동북부 지역의 Ecsed에 묻혔다.

 
 
 
사실 그녀의 실제로 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피로 젊음을 유지하려던 것이 진실인지 혹은
 
그녀를 질시하던 자들의 음모인지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아름답고 부와 권력을 가졌으며 게다가 남자들보다 더 지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바토리의 재산이 모두 몰수되고 그녀에 대한 수사가 너무 급하게 이루어진 것이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고 없애기 위한 음모였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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